풀어야 다시 뜰 수 있다
박사논문 디펜스를 앞두고 지도교수님이 말씀하셨다.
- 발표는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 네?
- 어차피 다들 논문 읽고 코멘트 준비해올 텐데, 발표 하고 듣고 하는건 시간 아깝잖아. 정 마음에 걸리면 한 10분 정도만 해.
그래서 정말로 발표 없는 디펜스를 했다.
디펜스 당일, 간단한 인사 후 바로 Q&A로 들어갔다. 커미티가 미리 준비해온 코멘트와 질문들을 차례로 말씀해주시고, 나는 그에 대해 답변하거나 추가 설명을 하는 형태였다.
처음엔 좀 어색했다. 하지만 장점도 확실했다. 커미티가 정말 궁금해하는 부분들을 바로 깊이 있게 논의할 수 있었고, 발표에 시간을 쓰지 않으니까 디스커션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케이스는 정말 드문 것 같다. 주변에서 이런 식으로 디펜스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아마 지도교수님의 철학이나 학과 분위기 등이 맞아떨어져서 가능했던 일인 것 같다.
디펜스에도 정답은 없다는 걸 깨달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사실 최종고를 내고 디펜스 날짜를 기다리면서 뜨개질을 배웠다 😅 시간은 남는데 딱히 할 일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고만 있기엔 너무 초조해서... 뭔가 디스트랙션이 필요했다.
뜨개질 바늘을 잡고 뜨고 풀고를 반복하면서, 이것도 논문 쓰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수하면 풀어서 다시 뜨고, 패턴을 익히고, 조금씩 완성되어가는 과정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