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자본이 만드는 진로의 격차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건 내 스스로의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버지 덕분이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학계 진로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들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석사-박사-교수 루트를 일찍부터 상상할 수 있었다.
특히 아버지가 강조하신 학점의 중요성은 매우 실용적인 조언이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까지 학점을 챙기라고 할까? 싶었지만, 나중에 대학원 진학 때 학점이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조언이 유용했다.
아버지가 알려준 학계 시스템에 대한 정보, 학점 관리의 중요성, 석사-박사-교수 경로에 대한 이해. 부르디외가 말한 문화자본의 사례이다.
많은 학생들이 진로 정보 부족으로 헤맬 때 나는 대강의 로드맵을 갖고 있었다. 이런 도움이 가능한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의 자녀 사이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진다.
정보에 대한 접근성만 해도 그렇다. 어떤 학과가 어떤 종류의 취업에 유리한지, 대학원 진학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유학을 가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 이런 정보들은 공식적으로 공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특정 계층 내에서만 자연스럽게 순환한다.
또 중요한 것은 “당연함의 감각”, 즉 가능한 삶에 대한 내면화된 인식이다. 내게는 대학원 진학이 자연스러운 선택지였지만, 어떤 경우에는 상상 밖의 옵션일 수 있다. 이런 인식의 차이가 실제 선택의 차이로 이어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