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은 경전이 아니다
아비투스 개념의 오용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부르디외의 원래 이론에 따르면, 아비투스는 어린 시절 계급 환경에서 체화되는 것이다. 상층 외부의 사람이 나중에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미국 양적 사회학의 전통에서 이 개념은 다양하게 조작화되었다. 거기서 변용된 개념으로 질적 연구도 이루어졌다. 원래 이론에서는 말이 안 되는 연구들도 나왔다.
예를 들어 Anthony Jack의 “The Privileged Poor” 같은 연구가 있다. 장학금 등으로 상층 사립학교 경험이 있는 빈곤층 자녀가 일종의 문화자본을 획득해서, (엘리트 고등교육 환경을 더 잘 헤쳐나감으로써) 계층 상향 이동에 도움이 되는 이점을 얻을 수 있는가? 그렇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다.
원래 개념과는 뜻이 다르다. 부르디외가 보면 이건 문화자본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도 개념이 확장되고 변용되면서 새로운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 본다. 이론은 경전이 아니기에.
사회이론은 결국 경험 세계를 잘 보이게 만들 때 그 의미가 있다. 실제로 사회학의 많은 핵심 개념들(지위, 합리성, 규범, 정체성)은 창시자의 정의와 현재 사용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다. 그럼에도 이 개념들이 살아 있는 이유는 확장과 변용을 통해 분석적 효용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상층의 아비투스는* 상층 외부의 사람이 나중에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라고 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