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연은 문을 여는 열쇠일 뿐
"처음에는 학연이나 에스닉 타이를 잘 활용해봐. 나중에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만, 시작할 때는 도움이 돼."
이런 조언은 좀 세속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학계에서는 순수하게 지적 능력과 연구 내용으로만 평가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을 텐데, 출신 학교나 국적 같은 걸로 네트워킹하라고 하니까.
하지만 내 경험상 이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된다.
대학원 초반에는 누구든 불안하다. 내가 하는 연구가 맞는 방향인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도 막막하다. 이럴 때 같은 학교 출신이나 같은 한국인 선배를 만나면 훨씬 편하게 대화할 수 있다.
"XX대학교 출신이시군요" 하는 한 마디로 어색함이 많이 줄어든다. 공통의 경험이나 아는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높고, 상대방도 좀 더 친근하게 대해준다. 마찬가지로 한국인끼리는 문화적 배경을 공유하고 있어서 미묘한 부분들을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해준다.\n\n중요한 건 이런 초기 연결이 나중에 더 의미있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만났지만, 대화해보니 연구 관심사가 비슷하다거나,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물론 나중에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학연이나 에스닉 타이는 문을 여는 열쇠일 뿐이다. 그 이후에는 내 능력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점차 그런 연결점 없이도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자신감과 능력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 학연이나 에스닉 타이를 활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에만 의존하는 게 문제인 것 같다. 처음에는 그런 안전한 출발점에서 시작해도 되지만, 점차 더 넓은 네트워크로 확장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받은 도움을 나중에 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 나도 이제 한국에서 온 후배들이 연락하면 최대한 도움을 주려고 한다. 그런 식으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