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논문 수집이 만드는 개인 데이터베이스
대학원에서는 누구나 논문 수집광이 된다. 이것도 읽어야지, 저것도 읽어야지 하면서 무작정 다운로드받아서 폴더에 저장한다. 처음에는 꼼꼼하게 폴더별로 분류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중에 읽을 논문 폴더는 점점 비대해진다. 500개, 1000개, 5000개… 어느 순간 숫자를 세는 것도 포기한다. Zotero 같은 툴을 쓰기 시작하면서 저장은 더욱 손쉬워진다. 클릭 한 번이면 끝. 그렇다고 읽는 건 아니다.
그런데 박사과정 중반쯤, 묘한 변화가 일어난다. 특정 주제에 대한 논문이 필요할 때 구글 스칼라에서 새로 검색하는 대신, 먼저 내 Zotero 라이브러리에서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이 주제 관련해서 뭔가 저장했었는데… 하면서 키워드 검색을 해본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말 관련 논문이 나온다. 그것도 꽤 좋은 것들로.
어느 순간 깨닫는다. 내가 수년간 쌓아온 논문 컬렉션이 일종의 개인 맞춤형 데이터베이스가 되었다는 것을.
내 연구 관심사와 방향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나에게 특화된 논문 검색 엔진이 된 셈이다.
무작정 저장했던 논문들이 실제로는 일정한 패턴과 일관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 연구 취향, 관심 분야, 접근 방식이 자연스럽게 반영되어 있었다.
이제는 새로운 연구를 시작할 때 내 라이브러리를 먼저 뒤진다. 내가 이미 큐레이션한 자료라는 신뢰감이 있다. 가끔은 몇 년 전에 저장해둔 논문이 현재 연구에 딱 맞아떨어져서 깜짝 놀라기도 한다.
결국 박사과정 초기의 무분별한 논문 수집은 나름의 목적과 의미가 있었던 셈이다.
지금도 계속 논문을 저장한다. 하지만 이제는 믿는다. 언젠가는 쓸모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