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인 기분과 전문가다운 태도
박사학위를 받고 조교수가 되었다. 명함에는 PhD라고 적혀있고, 사람들은 내 "전문성"을 존중한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나는 전문가인 기분이 별로 안 든다.
그런데 전문가인 기분이란 대체 어떤걸까?
학부 때만 해도 많은 걸 배우고 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새로운 지식을 배울 때마다 이런 게 있구나! 하는 깨달음과 한 학기가 끝나면 확실히 뭔가 늘었다는 성취감이 있었다.
그때는 배움의 경계가 명확했다. 실라버스가 있고, 시험 범위가 있고, 학기가 끝나면 얼마만큼 배웠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이제는 망망대해에 나뭇조각 붙들고 떠다니는 느낌이다.
학부 때는 산을 오르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바다를 떠도는 기분이다. 목적지도 불분명하고,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막연히 전문가들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있을 거라고 믿었다. 이 분야는 내가 제일 잘 알아, 하는 마음과 질문을 받으면 즉석에서 명쾌하게 답할 수 있는 여유.
무엇보다도, 이제 배울 거 다 배웠다는 충족감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새로운 메쏘드가 나오면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 쏟아지는 리터리쳐도 팔로업 해야 한다.
어찌보면 학생 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어렵다. 이제는 혼자서 익혀야 하니까.
그래도 달라진 게 있다면,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질문의 질이다. 예전에는 "이게 뭐야?" 라고 물었다면, 지금은 "이게 내가 아는 것과 어떻게 연결될까?" 하고 묻는다.
여러 멘토들이 말해주었듯, 박사학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언젠가는 진짜 전문가가 된 기분이 들까? 아마도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게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기분이 아니라 실제로 유용한 도움을 줄 수 있는가, 계속 배우고 있는가 하는 것들이니까.
전문가인 기분보다는 전문가다운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