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학위는 자격증이 아니라 경험의 증명서
박사학위를 받던 날을 떠올린다. 가운을 입고 모자를 쓰고, 수백 명의 시선 앞에서 후딩을 했다. 그 순간 뭔가 달라졌을까?
거울을 보니 똑같은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변화도 있었다.
가장 먼저 바뀐 건 호칭이었다. 어제까지는 그냥 대학원생이었는데, 하루 만에 갑자기 박사가 되다니.
명함에 Ph.D.라고 적힌 걸 보면서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내가 박사인가? 이 세 글자가 나를 얼마나 변화시켰나?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내 전문 분야가 아닌 질문에도 뭔가 현명한 답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낀다. 내가 하는 말에 무게가 실린다는 느낌. 더 신중해야 한다는 자각이 생겼다.
“전문가로서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 앞에서는 주저하게 된다. 나는 전문가인가?
어쩌면 내 머릿속은 달라진 게 없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모르는 게 많고, 확신 없는 것들이 더 많다. 박사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무지한지 더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오히려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겪은 가장 큰 변화는 생각하는 방식이었다. 복잡한 문제를 작은 단위로 쪼개어 접근하는 법, 가설을 세우고 증거를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내 전문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 대한 연구논문이 언론에 대서특필될 때도, 이 논문이 피어리뷰를 거쳤는지, 단 한 조각의 파인딩인지 또는 기존 리터리쳐에 컨센서스가 있는 잘 확립된 지식인지 구분해서 보게 되었다.
또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모른다’는 것에 익숙해졌다. 명확한 답이 없는 질문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웠다.
몇 년에 걸친 긴 프로젝트를 완성해본 경험도 크다.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꾸준히 나아가는 법을 체득했다.
그렇다면 박사학위는 자격증이라기보단 경험의 증명서가 아닐까. 학위를 하면서 더 똑똑해진 것은 아니다. 다만 생각하는 방법을 하나 더 익혔고, 불확실성과 친해졌으며, 긴 여정을 견디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