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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일할 자격이 있는가

논문 소개

Oh, E. (2018). Who deserves to work? How women develop expectations of child care support in Korea. Gender & Society, 32(4), 493-515. 두 살배기 아이를 둔 30대 여성이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제가 곧 복직해야 하는데…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전화 너머 잠시 침묵이 흘렀다. “네 일이 그렇게 중요하니?” 이 짧은 대화 속에 한국 사회의 모순이 담겨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여성 교육열, 하지만 OECD 최하위권의 성평등 지수. 오은실(2018)은 이 역설의 핵심에 ‘자격’이라는 개념이 있다고 봤다. 과연 누가 엄마가 되어서도 일할 ‘자격’이 있다고 여겨지나? 연구진은 2013년과 2015년 사이 서울 지역 기혼 여성 10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모두 6세 이하 자녀를 둔 고졸 이상 학력자들이었다. 이중 절반이 출산 후에도 계속 일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이들 중 88%가 조부모, 특히 할머니의 육아 지원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모든 엄마가 도움을 요청한 건 아니었다. 절반은 아예 시도하지 않았다. 왜? 도움을 요청한 엄마들과 그렇지 않은 엄마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답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자격’ 의식이었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엄마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말을 했다. 경하(32세, 명문대졸): “중견기업에서 일했는데 아무도 회사 이름을 몰랐어요. 결혼하고 보니 그런 회사에 다니는 게 의미 없다고 느꼈어요.” 신혜(36세, 대졸): “일할 자격이 있는 여성들이 있어요. 특히 변호사나 의사들. 성공한 사람들 말이에요.” 이들은 자신의 일이 ‘할머니의 희생을 받을 만큼 가치 있는지’ 스스로 판단했다. 그리고 대부분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반대로 도움을 요청한 엄마들은 어떨까? 이들도 마찬가지로 ‘자격’ 심사를 거쳤다. 하지만 결론이 달랐다. 윤지(30세, 명문대졸): “직장 복귀를 앞두고 계속 생각했어요. 내 일이 정말 중요한가? 나만의 욕심인가? 시어머니께 도움을 청하려면 먼저 내 일의 가치를 확신해야 했어요.” 이들도 죄책감과 의심을 경험했다. 하지만 결국 ‘내 일은 도움받을 가치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문제는 그 기준이 학력에 따라 달랐다는 것이다. 명문대 출신들은 ‘상징적 의미’를 강조했다. 이들에게 일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가족의 명예였다. 명문대를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은 온 가족의 성취였고, 이를 포기하는 것은 배신으로 여겨졌다. 할머니들도 이런 논리에 쉽게 설득됐다. 일반 대학 출신들은 더 복잡했다. 엘리트만큼 자명한 ‘지위’가 없어서 설득이 어려웠다. 윤서(33세, 일반대졸): “사람들은 큰 브랜드나 유명한 이름에 민감해서 그걸 활용해요. 저는 유명 기업 어린이집에서 일하는데, 시어머니가 친구들에게 자랑하세요.“ 한편 고졸 여성들은 다른 논리를 펼쳤다. 지위나 체면보다는 ‘경제적 안정성’을 강조했다. 다빈(41세, 고졸): “은행에서 20년 넘게 일했는데 이제 관리직이에요. 사무직으로 시작해서 조금씩 올라왔죠. 고교 동창들이 매년 직장을 바꾸는 것과 달리 안정적이에요. 시부모님께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가정의 두 기둥 중 하나’라고 설명했어요.” 이들은 화려한 지위보다 생존의 논리로 설득했다. 그리고 대부분 성공했다. 근본 질문: 왜 아버지들은 이런 ‘자격 심사’를 받지 않을까? 남성은 아이가 있어도 당연히 일하는 존재로 여겨지는데, 여성은 왜 매번 정당성을 증명해야 할까? 진짜 해법은 ‘누가 일할 자격이 있는가’를 묻는 대신, ‘모든 부모가 어떻게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가’를 묻는 사회로 바뀌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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