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의 열쇠는 남편의 귀가 시간이다
Brinton, M. C., & Oh, E. (2019). Babies, work, or both? Highly educated women’s employment and fertility in East Asia.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125(1), 105-140.
2018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98을 기록하며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1.0 아래로 떨어진 것이었다. 일본 역시 저출산국이었다. 정부는 수십조 원을 쏟아부으며 온갖 출산 장려 정책을 펼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왜일까?
Brinton & Oh (2019)는 다른 곳에서 답을 찾았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정확히는 남편들이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었다.
연구진은 동아시아의 특이한 현상에 주목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진작에 사라진 M자형 여성 고용 곡선이 한국과 일본에서만 여전히 남아있었다.
결혼하거나 첫 아이를 낳으면 여성들이 대거 직장을 그만두는 패턴이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더 놀라운 건 고학력 여성일수록 결혼을 늦게 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다는 것. 결혼해도 아이를 적게 낳았다. 일과 육아의 양립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이는 동아시아만의 현상이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고학력 여성이라고 결혼율과 출산율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다.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더 큰 기회비용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했다.
160명을 넘는 심층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진실은 충격적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고학력 부부들은 매일 밤 9시 30분이라는 시간과 씨름하고 있었다. 남편들이 집에 돌아오는 시간의 중위값이었다.
인터뷰에 참여한 기혼 여성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남편이 늦게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다고. 32세 한국인 민하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상적인 아버지는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할 책임을 지는 사람이에요.”
남편들도 마찬가지였다. 32세 한국인 지태: “기혼 남성이 가정을 잘 이끈다는 건 충분한 돈을 벌어서 가족을 먹여 살리는 거예요.”
문제는 이것이 개인의 선택만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노동시장 구조가 남성들을 과로로 내몰고 있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주당 50시간 이상 일하는 직장인 비율이 두 나라 모두 20%를 넘어 전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특히 25-44세 육아 시기 남성들의 초장시간 근무가 심각했다.
연공서열제와 종신고용제가 여전히 지배적인 노동 관행이어서 직장을 옮기기도 어려웠다. 야근을 거부하거나 육아휴직을 쓰는 남성은 ‘회사에 충성하지 않는 직원’으로 낙인찍혔다.
결과는 예상대로다. 고학력 부부들은 두 가지 선택지에 직면했다. 첫째,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거나 시간제로 전환하는 것. 둘째, 출산을 포기하거나 한 자녀로 만족하는 것.
연구진이 인터뷰한 부부들 중 3분의 2는 첫 번째 선택을 했다. 이들을 ’노동시장 적응자(labor market adjusters)’라고 명명했다. 아내들은 기존 성역할을 받아들이며 가정으로 돌아갔다.
나머지 3분의 1은 ’노동시장 도전자(labor market challengers)’였다. 아내가 계속 풀타임으로 일하겠다고 버티는 가정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다른 대가가 따랐다. 둘째 아이에 대한 확신이 현저히 떨어졌다.
연구진은 미혼 남녀 48명도 추가로 인터뷰했다. 놀라운 점은 이들이 기혼자들과 거의 동일한 현실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혼에 대한 열망은 강했지만,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다.
28세 일본 여성 유카리는 말한다. “안정적이고 전문적인 일을 하는 남자가 이상적이에요. 오후 5-6시에 퇴근하면 좋겠지만 회사에서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들 중 상당수는 결혼 후 자신의 일자리를 조정할 계획을 세웠다.
특히 일본 여성들은 시간제로의 전환을 당연하게 여겼다.
일본과 한국 정부는 지난 수십 년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저출산 대책을 펼쳤다. 육아휴직 확대, 보육시설 증설, 양육 수당 지급 등 서구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관대한 정책들이었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이 연구는 그 이유를 보여준다. 문제는 돈이나 시설보다도 ‘시간의 구조’였다. 남성의 초장시간 근무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여성 혼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건 불가능했다. 보육시설이 아무리 늘어도 오후 10시까지 운영하지는 않았다.
결론은 명확했다. 저출산 문제의 열쇠는 여성이 아니라 남성에게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남성의 근무 시간과 가사 분담에 있었다.
연구 데이터도 이를 뒷받침했다. 남편이 평소보다 일찍 들어오는 가정에서 둘째 아이 계획이 더 많았다. 또한 남편의 가사 분담율이 높을수록 아내의 출산 의향도 높아졌다.
그러려면 기업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야근을 미덕으로 여기는 조직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