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의 재미는 모든 단계에 흩어져 있다
연구 과정에서 가장 재밌는 순간을 꼽으라면 하나로 정하기 어렵다. 각 단계마다 고유한 재미가 있다.
동료들과 대화하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은 정말 특별하다. 서로가 서로의 sounding board가 되어, 혼자서는 절대 생각하지 못했을 아이디어들이 대화 중에 툭툭 튀어나온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나눈 10분 대화가 새로운 아젠다를 제공하기도 한다.
문헌 읽는 것도 상당히 재밌다. 특히 다른 연구자가 어떻게 문제를 접근했는지 보면서 내 연구와 연결점을 찾는 과정이 흥미롭다. 논문 읽다가 갑작스러운 발상에, “이거다!” 하는 순간의 짜릿함도 빼놓을 수 없다.
데이터 분석 결과가 처음 나오는 순간은 개중 백미이다. 몇 달, 때로는 몇 년 동안의 준비가 하나의 숫자로 수렴되는 그 순간. 가설이 맞아떨어질 때의 쾌감도 좋지만,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올 때의 당황스러움에 더 흥미가 생기기도 한다. “왜 이렇게 나왔을까?” 하는 의문에서 새로운 탐구가 시작된다.
라이팅할 때 프레이밍을 고민하는 것도 정말 재밌다. 같은 결과라도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논문이 된다. “어떻게 훅을 잡을까?” “어떤 순서로 설명하면 가장 설득력 있을까?” 창작의 즐거움이다.
반면 가장 괴로운 건 데이터 클리닝이다. 누락값 처리하고, 이상치 찾아내고, 변수명 통일하고… 데이터를 더 잘 알기 위해서라도 중요한 작업이지만 때때로 지루한 것도 사실이다.
리비전 과정도 만만치 않게 괴롭다. 리뷰어 요구사항을 거의 다 반영하느라 원래 내 논문이 아닌 것 같아질 때가 있다. “이것도 바꿔라, 저것도 추가해라” 하다 보면 애초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묻혀버릴 위험도 있다. 하지만 까다로운 리뷰어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며 더 탄탄한 논문을 완성할 때의 뿌듯함도 크다.
연구는 이 모든 순간들의 총합이다. 빛나는 순간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고, 지루하고 괴로운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과정을 모두 통과했을 때의 성취감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