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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이 더 좋았다는 말의 의미

아카데믹 라이프

주변 교수님들과 얘기하다 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보인다. “대학원 때가 더 좋았다”는 분들은 대개 자율성의 무게를 얘기한다. 방향을 잡아주고 일을 시키는 이가 있는 편이 훨씬 편했다고. 지도교수님이 “이거 해봐”, “저거 읽어봐”라고 말해주시던 때가 그립다고 한다. 지금은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데, 그게 생각보다 피곤하다는 거다. 어떤 연구를 할지, 어떤 논문을 쓸지 등 모든 선택이 자신의 책임이 되니까. 끝없이 펀딩을 따고 랩을 굴리고 학생을 관리하는 일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연구가 좋아서 이 길로 왔는데 막상 자기가 하게 된 건 연구의 그 좋았던 측면들이 아니라고. 반면 “교수가 된 후부터가 더 좋았다”는 분들은 다른 걸 꼽는다. 첫째, 자율성의 달콤함. 하고 싶은 연구를 독립적으로,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점. 지도교수님 눈치 안 보고, 내가 선택한 내 주제를 파고들 수 있다는 것. 둘째, 취준의 괴로움에서 벗어난 점. 더 이상 “언제까지 이 불안정한 상태로 살아야 하나”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매년 잡마켓 나가면서 느끼던 스트레스가 사라졌다는 것. 셋째, 경제적 어려움을 벗어난 점. 대학원 때의 빠듯한 생활비, TA/RA로 근근이 버티던 시절을 벗어나서 안정적인 수입이 생겼다는 것. 같은 변화를 겪었는데도 어떤 부분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갈린다. 자율성을 부담으로 보느냐, 특권으로 보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나는 후자의 경우이다. 하지만 몇 년 후에는 어떨까? 전자의 마음도 이해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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