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종류의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느냐
조언을 받는 입장에서 주는 입장이 되고 나니, 예전에 내가 들었던 말들이 새롭게 느껴진다. 당시에는 몰랐던 조언의 무게와 한계를 이제야 이해하게 된다.
석사 마칠 무렵 진로를 고민하며 주변에 조언을 구했다. 돌아오는 답들은 예상대로였다.
“학계 커리어는 불안정해. 언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냥 빨리 취직해서 경력 쌓는게 나아. 밥벌이는 해야지.“
“사회학으론 밥 벌어먹기 힘들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학계는 불안정하고, 기업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니까.
당시의 나는 혼란스러웠다. 정말 학계 커리어는 포기해야 하는 걸까?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 안정성이 더 중요한 걸까?
그러던 중 한 언니를 만났다. 외국계 대기업에서 여러 해 일하다가 국내에서 갓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시작한 분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언니, 회사 다니는 것 어땠어요? 대학원보다 나은가요?”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기업으로 간다고 워라밸이 있는 건 아냐. 야근하고, 주말에도 일하고, 스트레스도 장난 아니야.”
“그래도 일과 자아는 분리할 수 있지 않나요?”
“일과 내 자아를 분리하는 것도 학계가 아니라고 딱히 쉽지 않아. 회사 일이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되고, 승진이나 평가에 일희일비하게 돼. 결국 거기서 거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 허를 찔린 느낌이었다.
“그럼 왜 다시 학교로 오셨어요?”
“그래도 대학원에선 내 공부, 내 연구를 하잖아. 난 그 점이 좋았어.”
그 언니의 말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
첫째, 모든 선택에는 트레이드오프가 있다는 것.
둘째, 안정성이 유일한 기준은 아니라는 것. 자아실현, 의미, 내 삶에서의 만족감 같은 것들도 중요하다.
실제로 두 세계를 모두 경험해본 사람의 조언에는 무게가 있었다.
“거기서 거기야”라는 말 속에 담긴 통찰.
그래서 이제 나는 다른 식으로 조언한다.
“둘 다 힘들거예요. 각기 다른 방식으로요.“
“중요한 건 어떤 종류의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느냐는 것 같아요.”
어쩌면 좋은 조언이란, 선택을 대신해주는 게 아니라 내 선택의 근거를 또렷이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