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자아를 분리할 수 없다면
석사를 마치고 박사 유학을 준비하고 있을 때,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머릿속에는 세 가지 걱정이 맴돌고 있었다.
첫 번째, 너무 좁은 길
사회학 박사를 하고 나면 사실상 교수직 말고는 마땅한 커리어 패스가 없다. 그런데 교수 되기는 너무 힘들다. 경쟁률이 수백 대 일을 넘나든다. 설령 박사를 무사히 마쳐도 교수가 되지 못하면 그다음은? 플랜 B가 사실상 없는 길이었다. 올인만이 답인 게임이라는 생각에, 그 부담감이 컸다.
두 번째, 일과 자아의 과도한 통합
아카데믹 커리어에서는 연구가 곧 내 정체성이 된다. 내 연구 주제가 나를 정의하고, 논문의 성패가 곧 내 가치를 좌우하는 것만 같다.
이렇게 앞으로 평생을 살 수 있을까? 나라는 사람과 내가 하는 일이 이렇게 완전히 하나가 되어도 괜찮을까? 그 경계 없는 삶이 두려웠다.
세 번째, 구조 없는 일상에 대한 불안
인문사회 박사과정은 기본적으로 혼자 하는 일이다. 언제 일어나고, 언제 공부하고, 언제 쉴지 모두 내 몫이다.
회사라면 적어도 출퇴근 시간이 있고, 마감이 있고, 상사가 있어서 어느 정도 강제성이 있다. 하지만 박사과정은 오로지 내 동기와 의지에만 의존해야 한다.
과연 내가 그런 환경에서 꾸준히 열심히 일할 수 있을까? 솔직히 확신이 없었다.
이런 고민 끝에 결국 기업 취직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그러던 중 대기업을 다니다 박사과정으로 온 언니를 만난 것이다.
“일과 내 자아를 분리하는 것, 학계가 아니라고 딱히 쉽지 않아.”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박사과정을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일과 자아의 과도한 통합이었구나. 그런데 기업에서도 결국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승진과 평가가 내 정체성이 되고, 회사 일이 내 삶을 지배하기 쉽다는 것.
그렇다면 기업으로 갈 이유가 있을까? 어차피 일과 자아를 분리하기 어렵다면, 그래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게 박사 진학을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