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채로 나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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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찰이 안 보일 때 사람이 보인다

아카데믹 라이프

나는 눈이 나쁘다. 정말 나쁘다. 안경을 쓰고도 작은 글씨는 잘 안 보인다. 그래서 학회에서 사람들과 대화할 때 상대방의 명찰이 잘 안 보인다. 어느 대학 소속인지, 어떤 직급인지 알기 어렵다. 그냥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불편했다. 자칫 내가 실수를 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게 오히려 장점이라는 걸 깨달았다. 명찰이 안 보이니까 선입견이 없다. 상대방이 어느 대학 사람인지, 교수인지 학생인지, 박사과정인지 석사과정인지 모른 채로 대화를 시작한다. 오직 그 사람이 하는 말로만 상대를 판단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재밌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약간의 “나쁜 시력”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불필요한 것들은 흐릿하게 보고, 정말 중요한 것들은 또렷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시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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