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서큘러 니팅머신을 샀을 때는 신났다. 기계가 규칙적으로 돌아가며 코를 만들어내는 모습이 마법 같았다.
여러 색깔로 줄무늬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빨강, 노랑, 초록. 화려하고 예쁠 것 같았다. 하지만 뜨개가 끝났을 때 지옥이 펼쳐졌다. 실정리의 순간이 왔다.
색깔을 바꿀 때마다 실끝이 생긴다. 빨강에서 노랑으로, 노랑에서 초록으로. 실끝들이 작업물 곳곳에서 삐져나온다. 하나씩 돗바늘에 꿰어서 안쪽으로 숨겨야 한다. 끝없는 반복이다. “왜 이렇게 실끝이 많아?” 중얼거리면서도 계속 바늘을 움직인다.
문득 생각해보니 요즘 모든 게 이런 식이다. AI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든다. 창작의 재밌는 부분을 도맡아 한다. 그러면 사람은 뭘 하나? 프롬프트를 쓰고, 결과물을 다듬고, 빨래를 갠다.
마치 내가 니팅머신 앞에서 실정리를 하는 것처럼. 창작은 기계가, 나는 뒷정리를 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뒷정리는 단순한 마감 이상의 의미가 있다. 마지막 실끝을 정리해야 비로소 작업이 완성된다. 정리하지 않은 뜨개 작품은 미완이다.
다른 창작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기계가 초안을 만들고 결과물을 쏟아내도, 그것을 다듬고 정리하는 사람이 있어야 작품이 된다.
완성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