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은 천천히 흐른다
워킹 페이퍼들이랑 퓨처 프로젝트들을 생각하면 막 희망에 부푼다. 그런데 막상 파이프라인이 움직이는 속도는 매우 느리다.
이걸 파이프라인에 비교하는 게 맞는 걸까? 유속은 엄청 빠르잖아.
아, 사실 연구는 물이 아니라 기름인걸까. 기름이라 느리게 흐른다.
머릿속에서는 모든 게 빠르다.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팀을 구성하고, 대강의 분석 계획을 세우고, 어느 저널에 낼지까지 정한다. 몇 시간 만에 프로젝트 하나를 그려낸다.
현실에서는 모든 게 느리다. 서로 시간 맞춰 첫 미팅 잡는 데 몇 주, 데이터 모으는 데 몇 달에서 일 년, 클리닝하고 분석하는 데 또 몇 달. 초고 쓰는 데 한두 달, 피드백 받고 고치고 뭐하고. 저널 제출하고 리뷰 받는 데 두어 달에서 반 년.
느린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연구는 본질적으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데이터를 정리하고, 분석을 돌리고, 글을 쓰는 데 압축할 수 없는 최소 시간이 있다.
협업은 더 느리다. 각자의 스케줄을 맞춰야 하고, 피드백 주고받는 데 시간이 걸린다.
외부 요인도 많다. 리뷰어 배정, 에디터 결정, 공저자의 다른 프로젝트 상황.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타임라인을 좌우한다.
어떤 프로젝트는 시작하고 5년 만에 출판된다.
기름은 천천히 흐른다. 그래도 흐르긴 한다. 천천히, 끈적하게.